2013. 5. (가제)『문화콘텐츠의 이해』 (인문콘텐츠학회. 2013. 12. 출간 예정)


인문정보학


                

 

1. 인문정보학과 문화콘텐츠

2. 인문정보학의 과제

  1) 디지털 텍스트

  2) 시각적 인문학

3. 인문학의 미래, 인문정보학의 전망

 

 



1. 인문정보학과 문화콘텐츠


  인문정보학(Cultural Informatics)이란 인문지식의 정보화 기술에 대한 연구이다. 정보기술은 학술 세계에서 연구의 도구로 채용되지만 그 강력한 도구가 예전에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활동을 창출하기도 한다. 생물학과 정보기술이 융합하여 탄생한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 화학과 정보기술이 결합한 케모인포매틱스(Chemoinformatics), 의과학과 정보기술이 결합한 메디컬 인포매틱스(Medical Informatics)가 그런 것이다. 인문정보학은 인문학과 정보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하였다.1) 인문학적 지식을 연구자 및 그 연구 성과의 수요자가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지식 정보 자원으로 전환하고, 그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2차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가상의 연구 공간을 만듦으로써 인문학의 연구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그 성과의 사회적 확산을 용이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한 인문학 맞춤형 정보기술 연구를 인문정보학이라고 한다.2)

  인문정보학과 문화콘텐츠학은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인문정보학은 문화콘텐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문화콘텐츠학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 책 전체에서 폭넓게 논의되고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문화콘텐츠학과 인문학의 관계에 한정하여  보면, 영화나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문화 상품에 대해 그것의 이야기(storytelling)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문화콘텐츠로서의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 중 그 모태가 인문학 분야의 학과였던 곳에서는 대부분 이와 유사한 사고와 전략 속에서 ‘문화콘텐츠학’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들은 인문학과 문화산업 동향에 대한 지식을 아우르는 인력을 양성하여 그들이 문화산업계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화콘텐츠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인문지식뿐 아니라 그것의 산업적 응용 방법까지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학제적인 탐구가 ‘교양적 지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문화산업에 기여할 전문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문 지식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이야기 자원을 발굴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을 잘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지식의 세계는 너무도 넓고 깊을 뿐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서 혼자만의 힘으로 유효한 지식을 다 섭렵할 수는 없다.

  문화산업계의 지식 전문가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때 그것을 바로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지식의 중재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 정보통신망 속에 구현된 지식 정보 시스템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 디지털 정보의 세계 속에 인문지식의 중재자를 세우는 것은 바로 인문정보학이 담당하고자 하는 역할이다.

 그렇다면 문화콘텐츠를 위한 인문정보학의 역할은 문화콘텐츠 제작자가 필요로 하는 인문 지식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화콘텐츠라고 하는 것을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엔터테인먼트적 문화 상품으로 보고, 인문지식을 그 소재로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 주목하여 보면, 인문정보학은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문화콘텐츠의 생산에 관여한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사람들이 영화 연극 등의 공연 예술을 즐기던 방식과 오늘날의 그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과거에 오프라인 상에서만 관람할 수 있었던 수많은 작품들이 온라인 상에서 재매개(remediation)되는 것은 변화상의 일부일 뿐이다. 관람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영상물을 보면서 그 내용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새로운 즐길거리를 발견한다.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역사를 배우고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의 양상도 예전과는 다르다. 방문자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그것을 안내판의 한 구석이나 안내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QR 코드 이미지에 비출 때마다 방문지에 관한 풍부한 정보가 쏟아진다. 

  놀이와 학습을 구분할 필요없이 그것들이 한 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현상이 지식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의 ‘문화’이다.3) 이것은 분명히 정보 기술에 힘입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오로지 ‘기술’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문화적으로 향유할 가치가 있는 지적, 감성적 자원들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선택되고, 정리되어 디지털 정보 기술로 불리는 틀 안에 담겨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콘텐츠라고 하는 것은 ‘내용물’이라는 의미이다. 디지털 정보 기술이라는 그릇에 담겨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문화적 자원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콘텐츠’이다.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해 온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디지털 미디어에 담아 그 가치를 증대시키고 활용의 폭을 넓히는 인문정보학은 그 자체로 문화콘텐츠의 생산 기술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하다.



2. 인문정보학의 과제


  우리는 인터넷 상의 지식 정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지식의 작은 조각을 만들어내고, 다른 누군가가 뜻을 통하게 하는 연결 고리를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원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체계 없이 무질서하게 엮어지는 것과 일정한 목표와 방법을 가지고 수행되는 것 사이에는 결과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보다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 정보의 생산을 위해서는 전략과 기술의 개발, 그리고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육성이 필요하다.

  인문정보학은 인문지식의 정보화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탐구 주제로 삼는다. 정보 처리 기술 수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낮은 단계의 데이터 입출력 문제에서부터 정보과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구현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인문 지식이 결부되는 과제들은 모두 인문정보학의 과제일 수 있다. 그 가운데 실용적인 측면에서 문화콘텐츠의 제작과 직결된 것을 우선적으로 꼽는다면 인문학적 지식을 디지털 미디어에 탑재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텍스트 편찬 기술, 그리고 ‘읽고 이해하는’ 대상이었던 인문지식 콘텐츠를 ‘보고 느끼는’ 감성적 체험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인문지식의 시각화 기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디지털 텍스트


  디지털 텍스트란 지식을 전달하는 문자 언어를 디지털 미디어에 전자적인 신호로 기록한 것을 말한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여 컴퓨터 속에 저장한 한 편의 글도 넓은 의미의 디지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워드프로세서로 만든 문서는 종이에 출력하여 사람이 읽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디지털 텍스트는 기계(컴퓨터)가 읽고 해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종이에 쓰일 때에 얻을 수 없었던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정보 통신 네트워크, 모바일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대중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디지털 텍스트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매일 매일 접하는 인터넷 상의 모든 웹(Web) 문서들이 모두 다 디지털 텍스트이다. 그러한 문서들이 종이 책의 텍스트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어느 나라, 어느 기관의 서버에 있든, 인터넷 포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다. 그리고 적지 않은 양의 웹 문서에는 그 문서상에서 내용적 관련성을 가진 다른 문서를 찾아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문서에 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전자 문서를 하이퍼텍스트 문서(Hypertext Document)라고 한다. 이미 현대인들의 생업과 여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되어 있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은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저장하고 있는 컴퓨터의 범세계적인 집합이다. 하이퍼 텍스트는 종이에 쓰였던 텍스트가 디지털 신호로 전환되었다는 점 외에, 그 문서의 이곳, 저곳에 태그(tag)라고 불리우는 특별한 표시가 기입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시 1] HTML 문서

<html>

        <head>

                <title>웹 사이트 목록</title>

        </head>

        <body>

                <a href="http://www.humancontent.or.kr">인문콘텐츠학회</a><br/>

                <a href="http://www.aks.ac.kr">한국학중연구원</a><br/>

                <a href="http://www.digerati.kr">인문정보학</a><br/>

        </body>

</html>


  순수하게 문자나 삽도만으로 이루어진 기본 텍스트(Plain Text)에 이와 같은 태그를 기입하는 것을 마크업(markup)이라고 한다. 순수한 텍스트는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지만, 여기에 부가된 태그들은 기계(컴퓨터)가 읽고 해석하며, 지시된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이를 테면 <titlle>....... </title>이라는 태그는 표시된 부분이 그 문서의 제목이니 제목으로 취급하라는 의미이고, <a href="url“> ...... </a>라는 태그는 그곳을 클릭하면 "url"(Uniform Resource Locater)로 지시되는 곳(월드 와이드 웹 상의 주소)의 문서로 이동하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미리 약속된 몇 가지 태그를 기입하여 월드 와이드 웹 상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한 문서를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 문서라고 하는데, 이는 하이퍼 텍스트 링크 기능을 위주로 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디지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속에서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을 명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컴퓨터로 하여금 더욱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약속 체계가 XML(eXtensible Markup Language)이다. HTML의 태그는 미리 만들어진 것을 쓰는 것인 데 반해, XML의 태그는 문서 제작자가 새롭게 정의할 수 있고, 그 각각의 태그에 대해 컴퓨터가 어떠한 처리를 할 것인지를 지시할 수 있다. 다음은 XML 문서로 만들어진 디지털 텍스트의 한 예이다.


[예시 2] XML 문서


2-1. 원시 데이터

敎旨

  吳性鎰爲鬱陵島島監者.

光緖十六年九月 日

교지

  오성일을 울릉도 도감으로 임명함.

광서 16년 9월  일


2-2. XML 문서: 고문서

<고문서 유형="교지">

        <표제>敎旨</표제>

        <본문><인명 성격="수급자">吳性鎰</인명>爲<지명>鬱陵島</지명>島監者</본문>

        <일자 성격="발급일" 서력="1890"><연호>光緖</연호>十六年九月 日</일자>

</고문서>


2-3. XML 문서: 위치 정보

<공간정보 유형=“기관”>

        <명칭>독도박물관</명칭>

        <주소>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581-1</주소>

        <위치>

                <위도>37.48332</위도>

                <경도>130.9008</경도>

        </위치>

</공간정보>


  우리는 [2-1] 문서에 쓰인 오성일(吳性鎰)이 사람 이름이고, 울릉도(鬱陵島)가 지역 이름이라는 것을 알지만, 컴퓨터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하지만  [2-2]에서 처럼 ‘吳性鎰‘에 <인명> 태그를 달아주고, ’鬱陵島‘에 <지명> 태그를 달아주면 컴퓨터도 텍스트 속에서 그것을 식별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문서가 100만 건 정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컴퓨터는 그 모든 자료에 대해 완벽한 인명 색인과 지명 색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2-3]에는 이 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독도박물관이라고 하는 곳이 지구상의 어느곳에 위치하는지를 알리는(Global Positioning)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XML 마크업을 통해 <경도> 요소와 <위도> 요소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게 하고, XML 문서의 시각화를 담당하는 XSL(eXtensible Stylesheet Language) 문서에 그것의 처리를 지시하면,4) 컴퓨터는 전자지도 상에서 그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내 준다. [2-2]와 [2-3]은 독립적인 문서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독도박물관’이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하이퍼 링크를 맺을 수 있다. 조선시대의 고문서를 3차원 위성 영상 지도를 통해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림 1] 고문서와 위치 정보의 연계


  위의 예시들은 소략한 정보만을 담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데이터도 XML이라는 디지털 텍스트의 형식을 통해 체계적, 명시적으로 기술하여, 컴퓨터에게 그 처리를 지시할 수 있다. 낱장의 고문서나 지도뿐 아니라 수십권 분량의 백과사전이나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역사 기록이 모두 디지털 텍스트로 편찬됨으로써, 그 속에 담긴 작은 사실 하나까지도 사이버 공간에서 지식 정보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월드 와이드 웹 상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텍스트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되면서 그 가운데 서로 유관한 데이터가 서로에 대해 의미를 갖고 모여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탐구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시맨틱 웹(Semantic Web)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론적인 설명 대신 간단한 예시를 통해 시맨틱 웹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


[예시 3] 내용적으로 유관한 월드 와이드 웹 자원


3-1. 

함양 거연정 위치

Google Maps

3-2. 

함양 거연정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 DB

3-3.

함양 거연정 기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4.

거연정기 판액 사진

개인 홈페이지

3-5.

거연정기 한문 원문

고전번역원 문집총간 DB

3-6.

거연정기 번역문

개인 홈페이지

3-7.

임헌회(거연정기 저자) 기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역대인물 DB


  위에 예시로 든 7개의 디지털 자료는 모두 경상남도 함양군 남강천에 있는 유서 깊은 누정 ‘거연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용면에서 관련성이 있지만 각각 다른 곳에 별개의 문서로 존재한다.  이러한 자료를 고립된 자원으로 두지 않고, 의미의 연결 고리를 좇아 문맥을 이루게 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현재의 월드 와이드 웹 환경에서는 그 문서들에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는 어휘- 이를테면 ‘거연정’-를 이용해서 서로 관계가 있을 수 있는 후보 문서를 모두 탐색한 후에, 이용자의 눈으로 그 결과 하나 하나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것을 취하는 방법이 가능할 뿐이다.

  시맨틱 웹은 데이터가 생산될 때 유관한 자료의 의미적 연관 관계를 약속된 방식으로 명시함으로써 보다 지능적인 데이터 연계가 이루질 수 있게 할 것을 제안한다. 위에 예시한 월드 와이드 웹 상의 데이터에 대해 그 관계성을 정의하는 데이터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 개체의 고유한 이름(URI: Uniform Resource Identifier) 정의


  N1: 월드 와이드 웹 상에서 ‘함양 거연정’을 유일하게 지목하는 식별자

  N2: 월드 와이드 웹 상에서 ‘거연정기’를 유일하게 지목하는 식별자

  N3: 월드 와이드 웹 상에서 ‘임헌회’를 유일하게 지목하는 식별자

  D1: 3-1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2: 3-2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3: 3-3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4: 3-4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5: 3-5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6: 3-6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D7: 3-7 문서의 고유한 식별자


- 개체간의 관계성 정의


  N1의 누정기는 N2이다.

  N2의 저자는 N3이다.

  N1의 지도는 D1이다.

  N1의 사진은 D2이다.

  N1에 대한 설명은 D3이다.

  N2의 사진은 D4이다.

  N2의 한문 원문은 D5이다.

  N2의 번역문은 D6이다.

  N3에 대한 설명은 D3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계성을 기술한 정보가 [예시 3]에서 보인 개별 문서와 함께 인터넷 상에 존재할 때, 우리가 현재의 월드 와이드 웹에서 얻을 수 없는 무엇을 더 얻게 될 것인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웹 상에서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의 조각이 다른 조각들과 함께 모여 커다란 의미체를 이루게 된다.

  객체 사이의 관계성을 표시해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월드 와이드 웹의 세계에서는 RDF(Resource Description Framework)라고 불리우는 형식이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얻고 있다.5) 웹 주소와 같은 명명법으로 객체에 식별자를 부여하고 두 객체 사이의 관계성을 약속된 서술어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거연정기’라는 텍스트와 ‘임헌회’라는 인물 사이에 ‘~의 저자는 ~이다’라는 관계성을 서술어로 부여하는 RDF 문의 모양새는 다음과 같다.



[그림 2] RDF 그래프

 

  현실세계에서는 지역과 조직, 그리고 전공이라는 벽 때문에 지식과 정보가 조각 조각 나뉠 수밖에 없었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그 벽을 넘어서서 나누인 조각들을 모을 수 있다. 또 그것을 한 가지 기준이 아니라, 관심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문맥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다. 

  인문정보학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진 지식의 조각들을 그것의 관계성까지 고려한 디지털 텍스트로 전환하여 가상 세계에 옮겨 놓는 일에 주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미있는 지식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형태로 모여지고 쓰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시각적 인문학


  시각적 인문학(Visual Humanities)이란 인문지식을 시각적인 형태로 전환하여 그 활용성을 높이려는 시도이다.

  시각적 인문학의 한 분야는 인문학 지식으로 의미를 갖는 데이터의 관계망이나 통계적 수치를 그래프 형태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족보(族譜)’의 내용을 정보화하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족보(族譜)에는 한 집안의 여러 세대에 걸친 가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문자로만 기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하나의 형식을 예로 들면, 한 장의 지면을 5~7 개의 단으로 나누고 각 단에 한 계대의 자손을 기록함으로써 여려 대의 가승(家乘)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종이라고 하는 매체만을 사용할 수 있던 시절,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가장 우수한 지식의 시각화 기술 가운데 하나이다.

  디지털 기술로 지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자 족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전자 족보가 전통적인 족보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것은 족보라는 책을 디지털 매체에 옮겨 놓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고자 것은 그 책에 담겨 있는 사실(fact)을 전자적인 방법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디지털 족보의 가상 지면 상에서는 가계도를 새로운 모양으로 보여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수를 제한할 필요가 없이 수백 년 간의 가계도를 하나의 그래프로 그려낼 수도 있다.


[그림 3] 전통적인 족보의 계대 정보 / 팬 차트 형태로 시각화 한 계대 정보


  여러 집안 족보를 표준화된 형식의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하면 그것은 훨씬 더 의미있는 지식 콘텐츠로 재탄생하게 된다. 문중간의 혼맥(婚脈)을 찾아내고 그 관계를 데이터망의 시각화 기술을 통해 그래프로 표현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시대의 과거 급제자 명부인 문무과방목에서 추출한 인명 데이터를 여러 문중의 족보 DB와 연계하여 동일인을 찾고 그 관계성 데이터를 시각화하면 조선시대의 정치적 엘리트들의 혈연 지도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확산과 더불어 그 네크워크의 양태를 분석하고자 하는 수요가 일어나면서 데이터망 시각화 기술의 이용은 예전보다 훨씬 용이해졌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과 접목했을 때 의미있는 지식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는 인문지식 데이터를 생산하는 일이다.


[그림 4] 영·정조 5개 가문의 가계와 혼인 관계망6)


  보다 넓은 의미의 시각적 인문학은 인문지식을 전달하는 텍스트가 문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각적인 미디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문지식은 수천 년 동안 ‘글’이라는 이름의 문자 중심 텍스트의 형식으로 기록되고 전승되어 왔다. 그 영향으로 인문지식은 곧 글, 그리고 그 글을 담은 종이 책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이 흡수하는 지식의 텍스트는 반드시 전통적인 책이나 글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TV를 통해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장르의 영상물은 이미 여러 가지 척도에서 책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 유통의 무대가 되면서, 책 속의 글과는 다른 모습의 텍스트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정보 시대의 인문지식 수요를 겨냥한 시각적 인문학은 전통적인 문자 텍스트와 뉴미디어 상의 시각적 자료가 적정한 문맥으로 엮여져서 감성적인 멀티미디어 텍스트로 재탄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 마을의 자연 환경, 역사적인 유래와 유적, 그곳 주민들의 생업과 문화적인 이벤트, 특산물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기록한 학술 보고서를 예로 들어보자. 참고 도판 몇 장이 들어 있을 뿐, 대부분의 텍스트가 문자로만 기술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학계의 전문가들에게나 유용한 딱딱하고 지루한 자료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이야기되는 모든 사실과 인물들이 마을이라는 공간과 그 마을이 지내온 시간의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인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이 묘사하는 환경과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는 장치를 마련하면, 이 딱딱한 학술 보고서는 그 자체로 즐기면서 배우는 문화콘텐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 왕궁의 건축과 조경, 왕실의 혼인 등 갖가지 의례, 궁중에서 벌이는 다양한 연희와 놀이, 왕자와 공주에 대한 교육...... 건축학, 역사학 예술학, 교육학 등 분과학문 분야에서 제각기 따로따로 이러한 문제를 탐구하지만 그것은 ‘궁중’이라는 일정한 범위의 공간 내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을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재현하여 조선왕실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수용하는 무대로 만들고, 그 안에서 독자들이 알고자 하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자연스럽게 좀 더 깊은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게 한다면, 전통시대의 역사 문화에 대한 학습은 힘들고 따분한 일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듯 흥미진진하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산과 언덕, 강과 호수와 같은 자연 지형이나 전각, 누정, 불탑과 같은 건축물을 디지털 공간에 3차원 형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이른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하는 기술 분야의 연구 개발 성과에 의한 것이다. 

  자연 지형을 실물에 가까운 형태로 가상화 하는 기술은 지리 정보 시스템(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s) 연구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조밀하게 측정한 지표면의 고도 데이터를 입체적인 지형 그물망(Terrain Mesh)으로 형상화하고, 그곳에 위성 사진이나 항공 사진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를 입혀서 자연의 실제 모습을 닮은 3차원 영상 지도로 만드는 것이다. 지형 그물망 데이터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일 정도의 정밀한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그림 5] 지형 그물망


  건물과 같은 인공축조물의 가상화는 레이저 스캐너(Laser Scanner)를 통해 대상물 표면의 요철(凹凸)을 측정하고, 그 각각의 화소에 광학적 카메라로 포착한 색상을 입히는 방법으로 구현한다. 건축 문화재를 관리하는 분야에서는 보수를 위해 해체 복원 작업을 할 때나, 화재등의 사고로 실물을 잃었을 때 원형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도록 이 기술을 사용하지만, 여기에서 생산된 데이터는 그 문화재의 역사성과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목적으로도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림 6] 숭례문 3D모델7)


  사물의 움직임을 가상 세계에 옮겨 놓은 작업은 모션 캡쳐(Motion Capture, Motion Tracking) 기술을 활용한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제작 등에 주로 쓰이던 것인데 최근에는 인문․예술 분야의 연구나 지식 콘텐츠 제작 목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신체의 움직임을 전자적인 신호로 전환하고, 그 데이터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 상에서 아바타가 움직이게 하는 이 기술을 통해 전통 무용의 춤사위, 무예의 몸놀림, 한방 체조의 몸동작 등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다.

  

[그림 7] 모션 캡쳐링을 이용한 움직임의 디지털화8)


  자연지형이나 인공축조물의 3D 모델링은 현실과 닮은 3차원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가상현실 시스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모션 캡쳐링도 정적(靜的)이었던 가상세계에 생동감을 주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물의 형상을 수치화하고, 그 수치 값을 영상 신호로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물의 본래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재현하는 것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상을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감성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렌즈를 통해 포착된 이미지 - 사진(Photography)이다.

  과거에 필름이 하던 역할을 디지털 촬상소자(撮象素子)가 대신하게 되면서,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디지털 데이터를 생산하는 장비가 되었다. 요즈음은 거기에 갖가지 자동화 기능이 더해져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인문지식의 시각화 자료 가운데에는 카메라로 찍은 스틸 이미지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제작이 용이할 뿐 아니라 의미있는 대상을 명시적으로 포착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품질 지식 콘텐츠로 쓰일만한 사진을 제작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문 지식 콘텐츠 제작자들은 전통적인 사진학의 성과를 보다 진지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아날로그 필름 시절부터 사진학에서 다루어 오던 렌즈의 미학은 상당 부분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 지점에서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합성하여 얻어낸 넓은 화각의 스틸 이미지를  파노라마 사진(Panoramic Image)이라고 한다. 화각을 상하 사방 360°까지 넓히게 되면 광학적인 3D 영상이 만들어진다.  누정(樓亭)과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산과 강, 사찰이나 서원, 향교의 건물 배치, 전각 내부의 4면의 모습 등 시선을 어느 한 곳에만 고정하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이 360° 전방위 영상은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다.


[그림 8] 누정 안에서 촬영한 360° 파노라마 이미지


  유․무인 항공기를 이용하여 50~300m 고공에서 파노라마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항공 파노라마(Aerial Panoramic Photo)라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한 마을이나 지리적 환경과 취락 구조를 한 눈에 알 게 할 수 있다.  일정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360°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동영상 VR도  파노라마 사진 촬영을 기반으로 하는 응용 기술이다.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주변의 환경을 살피는 생태 탐사, 재개발 이전 산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의 구현 등에 응용된다.


  이와 같이 다양한 가상화 기술을 통해 어떤 대상을 감성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멀티미디어’(multimedia)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문자, 음향, 영상 등을 별도의 매체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날의 기술은 그것을 한꺼번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이름이다. 하지만 각각의 가상화 기술은 대상의 특정한 일면을 포착하고 재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모노미디어’(monomedia)에 머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진정한 멀티미디어는 다양한 모노미디어를 의미있게 조합하여, 종합적인 세계를 형상화하고 그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문자 텍스트와 함께 다른 미디어의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엮어내는 것을 하이퍼미디어(hypermedia)라고 한다. 의미의 연결고리를 좇아 무수한 텍스트 조각들이 자유롭게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고 하는데, 하이퍼미디어는 그 연결이 종래의 문자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고 오감으로 체험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정보학이 추구하는 시각적 인문학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술이 물리적인 형상의 가상화에 머물지 않고, 인문학적 연구가 찾아낸 무형의 지식이 그 안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이퍼미디어는 개별적인 모노미디어들을 의미있는 문맥(context)으로 엮어내는 ‘조합의 기술’이다.

  유서 깊은 역사성과 아름다운 건축미를 지닌 옛집을 디지털 세계에 재현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그 건물은 아무데나 자리한 것이 아니라 산세와 물줄기, 풍광을 모두 고려하여 선택된 곳에 지어졌을 것이다. 자연 형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3D 전자지도는 그 터의 풍수지리적 입지를 보여 줄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 등 분별과 소통의 문화를 담고 있는 건물의 구조와 외관은 360° 파노라마 사진으로,  부엌과 곳간에 남아 있는 옛 기물은 클로즈업 스틸 사진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연못가의 정자에서 연주되었을 거문고 연주는 동영상으로, 마당에서 벌어진 남사당의 기예는 모션 트래킹에 의한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여 그 흥취를 되살려 볼 수 있다. 그리고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현판(懸板)과 주련(柱聯)의 글씨와 해석, 그곳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이력과 업적, 그들이 남긴 서간(書簡)과 일기(日記) 등을 유관한 시각적 장면과 연결된 하이퍼텍스트로 제공할 수 있다.

  전자지도나 파노라마 영상, 동영상 등이 단순히 텍스트의 의미 전달을 도와주는 삽도(illustration)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으로 문맥을 만들고 텍스트의 흐름을 이끌어 가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미디어의 콘텐츠를 매개해 주는 문맥 구현자(Context Builder)9)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노미디어와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디지털 텍스트로 기술하거나 표준화된 형식의 메타데이터(metadata)로 제작하는 방법, 그 정보를 체계적으로 편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database)의 구축,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인터페이스 규약을 디지털 텍스트 상에 적정하게 활용하는 방법 등이 ‘조합의 기술’을 지향하는 하이퍼미디어의 세부 과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편적인 하나 하나의 미디어는 이야기(storytelling)로 엮이게 되고, 그 눈으로 보는 이야기를 통해 생동감 있는 지식의 전달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하이퍼미디어의 구현을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기술을 이해하고 그것의 운용 능력을 얻는 것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 기술을 가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원천 지식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이다. 그 토대 위에서만 무엇을 어떠한 형태로 시각화할지,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문맥으로 조합할지를 정하는 판단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인문학의 미래, 인문정보학의 전망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方舟)’는 세상이 대홍수로 사라질 때 옛 세상에 속했던 동물들을 그곳에 태워 새 세상으로 이주시키는 역할을 했다. SF 영화나 소설 중에는 지구가 재앙을 맞아 사라지게 되었을 때 거대한 우주선이 인류를 싣고 은하계 건너편의 새 지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신화나 소설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사이버 공간이라는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옛 세계에 속했던 많은 것이 그곳으로 옮겨 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도,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백화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도 예전에 그것들이 있었던 실재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으로 이주해 간 것이다.  현재로서는 현실 세계의 일부분이, 그러나 미래에는 좀 더 많은 부분이 그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인류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만들고 쌓아온 유산들을 인류 문명의 새로운 거주 공간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수많은 방주들이 건조되고, 짐을 싣고, 닻을 올리고 있다. 인문정보학은 인문지식의 사이버 이주를 위한 방주를 띄우는 일이다.


  컴퓨터의 대중화가 시작된 20년 전부터 오늘까지 인문지식의 디지털화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디지털 코드로 전환하는, 문자의 디지털화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문자 검색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의 변화는 사이버 환경의 특성에 충분히 적응한 모습으로 볼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인문정보학의 과제들은 인문지식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여 가치있는 문화콘텐츠가 되기 위한 요건들이다.

  인문지식을 디지털 환경에 적응시키는 방법의 많은 부분은 정보 과학이나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기술적 성과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요소들을 특정 분야의 인문 지식에 적용하여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 분야 인문 지식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그 일은 단순히 확정된 기술을 인문 지식에 도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 지식의 내용과 특성에 따라 적용할 기술을 변경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하는 일이다.10)

  그렇다면, 인문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연구자가 정보기술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은 용이한 일인가?  중요한 사실은 ‘정보기술’이 결코 ‘정보기술 전문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문학’이 인문학 교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같은 논리이다. 정보 기술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은 현재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여 더욱 발전된 새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기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 운용의 주체가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휴대폰 하나를 새로 장만해도 그 사용법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고, 카메라 하나를 새로 사도 그것을 잘 쓰기 위한 공부가 필요한데,  인문지식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학습과 연구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문정보학의 교육 프로그램은 인문지식을 디지털 세계에 소통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선별하고, 인문 지식의 전문가가 그것들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인문정보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1세기의 디지털 문명 속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문정보학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문정보학이 가르치는 디지털 텍스트와 하이퍼미디어는 아날로그 시대의 글쓰기와 책 출판을 대체할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문정보학을 독립된 전공이나 분과학문으로 보기보다는 인문학의 학습과 연구를 위한 기초 소양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한편 인문학 연구 분야 중에서도 방대한 사료 속 데이터의 분석이라든가 언어 자원 처리, 지리 정보의 수집 분석 등 데이터 처리를 수반하는 연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학제간 교육의 차원에서 좀 더 심화된 수준의 인문정보학 교육을 이수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이 분야의 연구 수준은 매우 취약하며, 연구 효율 제고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인문학 연구 성과를 이용한 다양한 응용 연구, 디지털 환경에서 인문 지식을 사회화 하는 지식 콘텐츠의 개발에 관심을 둔 사람은 문화콘텐츠학의 일환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인문정보학을 전공으로 삼아 인문지식의 디지털 정보화 기술과 그것의 이론적 배경을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획․개발자, 공공 영역에서 지식 자원의 사회적 수집․공유․활용을 촉진하는 정보 관리자, 디지털 인문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인문정보학 전문 연구자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단순히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전환된 세계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그곳에서 가능해지기도 하고, 현실 세계에서 지배적이었던 논리가 그곳에서는 아예 의미 없게 되기도 한다. 이주하려는 곳의 환경이 기존에 살던 곳과 전혀 다르다면, 그 다른 점을 수용하고,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문 지식을 사이버 세계로 이주시키는 인문정보학의 과업은 인문지식이 그곳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일이다.

 


1)  인문학과 정보기술의 융합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구, 교육 활동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로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문정보학은 디지털 인문학을 위한 기술적 방법론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디지털 인문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인문학에 관해서는 김현, 「디지털 인문학: 인문학과 문화콘텐츠의 상생 구도에 관한 구상」 (『인문콘텐츠』 29, 2013. 6.) 참조.

2)  김현, 『인문정보학의 모색』 (2012. 12. 북코리아) p. 363

3) 김현, 「문화콘텐츠, 정보기술 플랫폼, 그곳에서의 인문지식」, 2010. 8. 『철학연구』 90

4) XSL 문서에서 전자지도 콘텐츠 공급자가 제공하는 Open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구동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인문지식 콘텐츠를 위한 전자지도 활용 방안에 관해서는 「GIS와 지역문화 콘텐츠의 연계 응용 기술」(2009. 11. 『인문콘텐츠』 16)에서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5) RDF(The Resource Description Framework)는 월드 와이드 웹 자원의 메타데이터를 기술하는 형식이다. 2004년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의 권고안이 제시되었으며, 시맨틱 웹 활동의 일환으로 운용되고 있다. RDF가 기술하는 웹 자원의 속성은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읽고 해석하기 위한 것이며, 인간을 대신하여 지능적인 정보 처리를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http://www.w3.org/RDF/

6) 이재옥, 「혼인 관계 분석을 위한 족보 데이터베이스 개발 연구」, 2010. 12.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석사학위 청구 논문

7) 문화재연구소 제작

8)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

9) 김현, 「하이퍼미디어: 인문지식의 새로운 형식을 찾아서」, 『인문정보학의 모색』 (2012. 12. 북코리아) p. 818

10) 김현, 「인문콘텐츠를 위한 정보학 연구 추진 방향」, 2003. 6. 『인문콘텐츠』 1